“옷을 둘러싼 작은 집들 속의 상상력”
박민환 건축가의 아동복 쇼룸, 2017년 서울
서울 압구정동의 한 모퉁이, 화려한 상업 건축 사이로 유독 고요하면서도 독창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이 있다. 아동복을 위한 쇼룸이자 하나의 건축적 실험인 이 공간은, 박민환 건축가의 2017년 작품이다. 단 40제곱미터. 극히 제한된 면적 속에 구현된 이 공간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작은 집들’로 구성된 하나의 건축적 마을이다.
박민환 건축가는 이 쇼룸을 위해 여섯 개의 작은 ‘집’을 제안했다. 그 각각의 집은 벽과 창이라는 건축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동복이라는 작고 섬세한 대상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이러한 구성은 단순한 디스플레이 이상의 경험을 관객에게 제공한다. 아이 옷을 보기 위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또 하나의 ‘공간’을 지나고, 새로운 시선과 마주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공간의 진가는 ‘틈’에 있다. 작은 집들 사이를 잇는 빈틈들 — 다시 말해 벽 사이의 여백 — 은 단절이 아니라 소통의 통로가 된다. 이 틈을 통해 외부와 내부는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쇼룸을 방문한 이들은 공간의 각도를 달리하며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아동복과 조우하게 된다. 공간은 조용하지만, 그 안에서 시선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상상은 확장된다.
창은 각기 다른 크기와 비례를 갖는다. 어떤 창은 수직의 벽에, 또 다른 창은 수평으로 길게 놓여 있다. 이러한 비균질성과 겹침 속에서, 아이 옷은 단지 전시물이 아닌 하나의 ‘장면’으로 재구성된다. 천을 통해 스며드는 빛, 창을 통해 프레임된 시야, 그리고 그 너머로 살짝 모습을 드러내는 아동복은 보는 이에게 순수하고 상상력 가득한 세계를 환기시킨다.
이 공간은 매우 추상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용성과 기능성은 극대화되어 있다. 상업 공간으로서 아동복을 충분히 강조하면서도, 전시되는 대상이 공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설계된 이곳은 박민환 건축의 특유의 ‘절제된 감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건축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단순한 상품 진열이 아닌, 공간 자체가 이야기를 전하는 장치가 되기를 바랐다. 그 의도는 완벽히 실현되었고, 결과적으로 이 작은 쇼룸은 서울 압구정이라는 복잡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작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하나의 건축적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작은 집들 속의 상상력’— 박민환 건축가의 아동복 쇼룸은 단지 건물이 아니라, 감각과 구조, 빛과 움직임이 교차하는 새로운 도시적 풍경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건축이 줄 수 있는 본질적 감동, 즉 ‘공간이 말을 거는 경험’ 을 만나게 된다.